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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사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한 그리고리 페렐만(Grigori Yakovlevich Perelman, 1966-현재)

by 팥맛콩 2022.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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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가 우주의 모양을 설명하고자 3차원 공간에 관한 추측을 만들었다. 이 푸앵카레 추측은 위상수학 분야의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지난 100년 동안 증명되지 않았다. 2000, 보스턴의 한 독지가가 증명에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걸었을 때 그가 상금을 수여할 일이 생길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2002년에 그리고리 페렐만이라는 러시아의 수학자가 간결한 논문을 온라인 아카이브에 게재했다. 페렐만은 더 광범위한 문제와 씨름을 하던 중에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는 데 남아 있던 걸림돌을 기적적으로 일소했던 것 같다. 곧 수학계에 소문이 널리 퍼져나갔다. 페렐만의 증명은 천재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소문에 의하면 페렐만은 이를 출판할 계획이 없었다. 그런 기이한 행동은 시작에 불과했다. 페렐만은 어머니를 모시고 미국을 잠시 여행한 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 자신의 연구를 검토하는 몇몇 동료를 제외하고는 모두와 연락을 끊었다. 그는 필즈상도 거절했는데, 노벨상위원회를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2005년에는 저는 수학에 실망했고 다른 무언가를 해보고 싶습니다"라는 편지를 남기고 스테클로프 연구소를 떠났다.

 

페렐만은 왜 세상에 등을 돌렸을까? 이 질문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 사람을 고집이 세다고 묘사한 마샤 게센Masha Gessen의 세상이 가둔 천재 페럴만에 자주 나타난다. 소비에트 시대 이후 지식인들에 관한 책과 유전자 검사의 잠재적 위험에 대한 책을 썼던 러시아 출신 저널리스트 게센은 흔치 않은 정보를 다루는 데 익숙하다. 게센은 페렐만으로부터 모든 도움도 받지 않은 채 조용하고 탁월한 학생이 모난 천재 수학자로 성공하는 과정을 기록했으며, 페렐만의 연구 바탕인 완벽주의가 자신을 스스로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말한다.

 

차별 때문에 수학자로서의 경력을 이어갈 수 없었던 어머니를 둔 부분이 페렐만은 1970년대에 러시아 내 수학경시대회에서 탁월한 성적을 올렸다. 게센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수학 선생과 학급 친구들 대부분이 페렐만을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수학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어린 페렐만은 까다로운 문제에 막히면 답이 나올 때까지 책상에다 탁구공을 튀기고, 넓적다리를 세게 문지르며 흥얼대거나 투덜대곤 했다.

 

페렐만이 대학에 가게 되었을 때, 손톱이 너무 길어서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연구를 계속하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러시아 수학자 인명사전에 오르며 소원을 이룬 듯하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했을 때 대학원을 졸업한 페렐만은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잠시 수학을 가르쳤다. 그곳에서 그는 매일 같은 갈색 코듀로이 재킷을 입었고 검은 빵과 발효유만 먹으며 목숨을 부지했다) 하지만 곧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어머니의 호젓한 아파트로 돌아가 푸앵카레 추측을 푼 10년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아마도 페렐만이 침묵을 지켰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는 일종의 수학적 로르샤흐 테스트 Rorschach test(무의미한 문양에 대한 반응으로 심리를 진단하는 검사 옮긴이)가 되었던 것 같다. 그의 동료 중 일부는 그를 관행을 따르지 않지만 도덕적인 사람으로, 일부는 기이한 순수 주의자로 여긴다. 게센은 프랑스부터 이스라엘까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동료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페렐만의 속세에 대한 환멸은 "엄격하고 쉽게 만족하지 않고 과도하게 비판적인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며, 한편으로 그런 성향이 그를 천재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제시한다. 페렐만에 대한 소문을 토대로 간접적으로 진단해볼 때 그는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추정되므로 자신이 만든 규칙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규칙에 따라 행동할 수 없었을 뿐이고, 단순히 내키지 않아서 고집을 피웠던 것이 아니라고 게센은말한다.

 

페렐만의 동기를 나타내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가 매우 강한 애착을 갖고 연구에 매진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학생 때 수학 중독이었던 게센도 페렐만의 어려운 수학을 한 챕터에서만 설명한다(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는 도널 오셔 Donal O'Shea가 쉽게 쓴 푸앵카레 추측을 참고하길 바란다). 하지만 게센은 소련의 수학계라는 "잔인하고 중상모략하는 작은 세계"에서 페렐만을 치켜세웠던 상황에 대하여 빈틈없이 설명했고, 이리저리 꼬여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 그의 논리를 탁월하게 재구성했다. 그리하여 게센의 책은 보기 드문 작품이 되었다. 세상을 등진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애칭 그리샤)은 세계적으로 까다로운 문제 중 하나인 푸앵카레 추측을 풀었다고 주장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홀연히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사라졌다. 지난 목요일, 페렐만은 자신의 업적에 대하여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 있는 클레이수학연구소에서 수여하는 100만 달러의 상금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사양하겠습니다. 상금을 받을 이유와 거절할 이유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정하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라고 말했다.

 

클레이연구소 소장 제임스 칼슨은 페렐만과 전화 통화를 한 뒤 "그는 늘 그렇듯 상당히 명랑했다. 그렇지만 결정에 있어서는 상당히 단호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대학자 앙리 푸앵카레의 이름을 딴 그 문제는 구멍이 없는 3차원 공간은 반드시 원구가 된다는 추론으로 지난 100년간 수학자들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다.

 

2003년 페렐만이 추측을 증명하는 일련의 논문을 인터넷에 올렸다. 컬럼비아대학의 수학자 리처드 해밀턴의 연구를 기반으로 했으며, 코넬대학의 수학자 윌리엄 서스턴보다 더 깊이 다루었다.

 

페렐만은 미국 여기저기를 잠시 여행한 후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고 러시아로 돌아갔다. 그가 벌여놓은 사태를 수습하고 그가 정말로 푸앵카레의 추측을 증명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세계 수학자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전 세계에서 페렐만의 증명을 되짚고, 해석하고, 확인하는 경쟁이 계속되었다. 그 사이 페렐만은 스테클로프 연구소를 그만두고 어머니의 집으로 들어가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단절했다.

2006년 총 1,000페이지가 넘는 빽빽한 논문이 출판을 앞두고 있었을 때, 페렐만이 푸앵카레 추측을 풀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마드리드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수학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필즈상이 수여되었지만 이미 수상을 거부했던 전력이 있는 페렐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3월 클레이연구소가 그가 큰 상을 받았다고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상을 받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6월 파리에서 열린 푸앵카레 추측의 증명을 축하하는 3일간의 학술토론회는 페렐만이 참석하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

 

인테르팍스 통신은 페렐만이 해밀턴 박사 역시 자신이 받은 만큼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간단히 말해서, 주된 이유는 제가 수학계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들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요."

 

클레이연구소는 이번 가을에 페렐만이 거절한 상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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