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선구자이자 여행자였던 에르되시 팔, 83세로 세상을 떠나다.
수학 연구에 전념하면서 집도 직업도 없이 수학의 순례자로 살았던 전설적인 수학자 에르되시 팔 박사가 금요일 바르샤바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83세다.
지난 주말, 절친한 사이였던 헝가리 과학아카데미의 수학자 미키 시모노비츠Miki Simonovits 박사가 보낸 이메일을 보면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시모노비츠 박사 말로는 에르되시가 바르샤바에서 열린 수학 학회에 참석 중이었다고 한다.
전 세계 수학자들은 이제야 그 소식을 전해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AT&T 연구소 정보과학연구센터장 로널드 L. 그레이엄 박사는 "전 세계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라는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수학자들은 에르되시를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에르되시는 금세기 가장 위대한 수학자이며 정수론 같은 분야에서 골치 아픈 문제를 제시하거나 해결하고 컴퓨터 과학의 토대인 이산수학의 기초를 닦았다. 또한 역사상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수학자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이 들어간 논문만 해도 1,500편이 넘는다. 친구들은 에르되시가 세상에서 가장 별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뉴욕대학 쿠란트 수학연구소의 수학자 조엘 H. 스펜서 Joel H. Spencer 박사는 에르되시 박사를 금세기 최고의 수학자 가운데 한 명”이라고 평했다. 그레이엄 박사는 "상위 열 명 안에 든다"고 말했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에르되시와 함께 일한 적 있는 에른스트 슈트라우스 Ernst Straus 박사는 1983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에르되시에게 감사의 글을 썼던 적이 있다. 그 글에서 그는 에르되시 박사를 두고 “수학계에서 이론 학자들이 득세한 금세기에도, 그는 이른바 문제 해결사들에게 왕자 같은 존재였고 문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도 절대군주였다"라고 했다. 그리고 수학자들이 경배하는 18세기의 위대한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 Leonhard Euler에 빗대어 "우리 시대의 오일러였다"라는 말도 했다.
구부정하고 왜소한 몸집에 양말과 샌들을 자주 신던 에르되시는, 살 곳을 찾거나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소득세를 내거나 식료품을 사거나 수표를 지불하는 것 같은 일상적인 일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뭔가 소유한다는 건 귀찮은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수학 연구에만 전념했던 에르되시는 반쯤 비어 있는 여행 가방을 끌고 학회가 끝나면 다른 학회로 옮겨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수학자들과 어울렸다. 동료들은 그를 보살피고 돈을 빌려주었으며 식사를 제공하고 옷을 사주고 세금까지 내주었다. 에르되시는 그 대가로 사람들에게 수많은 아이디어를 주고 의욕을 북돋웠으며, 풀어야 할 문제를 제시하고 그 문제를 공략하는 아주 멋진 방법도 알려주었다.
시카고대학의 라슬로 바바이 박사는 에르되시의 여든 번째 생일을 축하하면서 에르되시의 친구들이 "그를 다정하게 보살폈으며 그가 집과 사무실에 가져다준 빛으로 소박하게나마 보답받았다"고 말했다.
수학자들은 에르되시와의 관계를 자랑하면서 '에르되시 수'를 즐겨 사용한다. 에르되시와 논문을 함께 발표한 사람은 에르되시 수가 1이다. 그리고 에르되시 수가 1인 사람과 논문을 함께 발표한 사람은 에르되시 수가 2가 되는 식이다. 그레이엄 박사 말로는 최종 집계를 해보니 에르되시와 공동 연구한 사람이 458명이었다고 한다. 에르되시 수가 2인 수학자는 4,500명이었다. 그레이엄 말로는 에르되시와 함께 시작한 문제를 지금까지 연구하고 있는 수학자가 많아서, 에르되시가 세상을 뜬 뒤에 그의 이름이 실린 채 발표를 기다리는 논문의 숫자만 해도 50~100편에 달한다고 한다.
에르되시 수가 1인 그레이엄 박사는 에르되시의 돈을 대신 관리했을 뿐 아니라 집에 '에르되시 방도 따로 마련해줄 정도였다. 그레이엄 박사는 에르되시가 수학 학술회의에서 강의로 번 돈 대부분을 학생들을 돕거나 본인이 제시한 문제를 푸는 사람들에게 상금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세상을 떠나면서 에르되시가 남긴 돈은 고작 2만5,000달러였으며 그나마 수학 발전을 위해 그 돈을 어떻게 쓸지 다른 수학자들과 협의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레이엄 박사는 "에르되시의 원동력은 이해하고 밝히려는 욕구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건 에르되시의 참으로 훌륭한 집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에르되시의 인생에서 모든 것을 결정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에르되시 수가 1인 뉴욕대학의 스펜서 박사는 "에르되시는 늘 수학의 진리를 탐구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능력이 있었다. 이미 재능이 있는 사람,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완전히 새로운 경지로 데려갔다. 그래서 우리가 모두 에르되시의 수학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1913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에르되시는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수학 신동이었다. 그레이엄 박사의 말로는 3살 때 혼자 100도에서 250도를 빼서 영하 150도라는 답을 얻으면서 음수라는 개념을 깨우쳤다고 한다. 몇 년 후에는 문제를 스스로 만들고 푸는 일에 재미를 들였다. '기차를 타고 태양까지 가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릴까?' 같은 문제였다.
에르되시에게는 누나가 둘 있었는데 그가 태어나기 며칠 전에 성홍열로 모두 죽었다. 그래서 에르되시의 어머니는 그를 무척이나 애지중지했다. 그레이엄 박사 말로는 수학 교사였던 에르되시의 부모는 에르되시를 공립학교에 몇 년 다니게 한 다음 독일인 여자 가정교사를 고용해 집에서 공부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에르되시의 어머니가 에르되시를 무척이나 아꼈다면서 "에르되시는 21살이 될 때까지 토스트에 버터를 직접 발라본 적이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에르되시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서 남아 있는 직계 가족도 없다.
에르되시는 20살 때 정수론에서 유명한 정리 하나를 우아하게 증명하면서 수학자로 이름을 알렸다. 그것은 바로 셰비체프의 정리 Chebyshev's theorem였으며, 그 내용은 1보다 큰 모든 수중에서 어떤 수와 그 수보다 두 배가 큰 수 사이에는 항상 최소한 1개의 소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소수는 그 자신과 외에 다른 수로는 나누어지지 않는 수를 말한다.
에르되시는 수학의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지만, 그중에서도 정수론에 평생 관심을 두었고 종종 설명하기는 쉽지만 풀기는 어려우며 체비쇼프의 정리처럼 숫자 간의 관계를 다루는 문제를 만들어내고 또 풀었다. 그레이엄 박사는 “에르되시는 100년 넘게 풀리지 않은 수학 문제를 말할 수 있다면, 그 문제는 아마도 정수론 문제일 거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많은 수학자처럼 에르되시는 수학의 진리는 발견하는 것이지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전달하면서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하늘에 하느님이 관리하는 '커다란 책'이 있으며 그 속에 모든 수학 문제에 관한 가장 우아한 증명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책을 슬쩍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이러이러한 것을 볼 수 있을 거라며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에르되시는 완벽한 죽음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했다. 완벽한 죽음은 강의가 끝난 직후에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강의에서 에르되시가 증명에 관해 설명을 끝마치면, 성미가 고약한 청중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이렇게 묻는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에르되시는 여느 때처럼 이렇게 대답한다. "그건 다음 세대에 넘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다음 쓰러져 죽는 것이다.
그레이엄 박사 말로는 에르되시는 완벽한 죽음이라는 자신의 환상을 완벽하게 이루지는 못했지만, 거의 비슷하게는 이루었다고 한다.
“에르되시는 사력을 다해 문제를 하나 더 풀다가 급사했다. 그가 바라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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