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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사

IQ가 230? 현존하는 천재수학자 테렌스 타오 (Terence Tao, 1975-현재)

by 팥맛콩 2022.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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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를 향한 머나먼 여정

 

지난 1400명의 청중이 소수에 관한 공개 강의를 듣기 위해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강당을 가득 채웠다. 소수에 관한 강의에 서서 듣는 사람까지 있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바로 옆 교실에서는 35명이 비디오 화면을 통해 강의를 지켜보았다. 그냥 돌아간 사람만 80명이었다.

 

발표자로 나온 수학과 교수 테렌스 타오 Terence Tao"파리에 가서 에펠탑과 개선문만 보고 지나가는 것처럼 강의가 정신없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투는 정중하고 겸손했으며 모국인 오스트레일리아 억양이 묻어났다. 타오 박사는 소수 연구가 시작된 지 20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리고 여전히 아주 흥미진진한 분야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생방송 된 타오 박사의 한 시간짜리 강의가 끝나자, 몇몇 학생이 강당 앞으로 내려와 박사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타오 박사는 평생 천재적인 능력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한 몸에 받았다. 2살 때 글을 읽었고 9살 때는 대학에서 수학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20살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제 31살이 된 타오 박사는 신동에서 세계 최고의 수학자가 되어 소수와 영상 압축을 비롯한 아주 광범위한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지난여름에는 흔히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필즈상과 아무 조건 없는 50만 달러의 상금이 걸린 이른바 '천재들의 상'인 맥아더 상을 받았다.

 

본인도 어릴 때 신동이었고 필즈상 수상자이기도 한 프린스턴대학의 찰스 페퍼먼 Charles Fefferman 교수는 타오 박사는 정말 대단하다. 정말 최고다. 한 세대에 몇 명 없는 정말 드문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동료들은 타오 박사를 장난스럽게 수학계의 록 스타 혹은 모차르트라고 부른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박물관 두 곳에서는 영구 전시하겠다며 사진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게다가 2007년 올해의 오스트레일리아인 상 최종 결승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타오 박사는 그냥 유명해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패리스 힐턴 효과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박사는 격식을 별로 차리지 않는다. 캠퍼스 사무실은 일본 만화책 시리즈인 란마 1/2의 포스터로 장식되어 있다. 아디다스 스웨터와 청바지 차림에 지저분한 스니커즈를 신고 수학과 건물의 복도를 걸어 다니는 박사의 모습은 마치 대학원생 같아 보인다. 박사는 맥아더 상의 상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만 나사 제트추진연구소 공학자인 아내 로라와 함께 작년에 구입한 집의 주택담보대출이 있다는 말을 넌지시 던졌을 뿐이다.

 

타오 박사는 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화창한 남캘리포니아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이곳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에 원하는 게 모두 있기 때문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 중에 여기 없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여기는 눈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삽이 필요 없다.

 

지난여름 필즈상을 받으면서 집중적으로 쏟아졌던 언론의 관심은 차츰 줄어들었다. 타오 박사는 유명세가 순간적으로 지나간 것 같아 다시 수학에 전념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박사의 연구 분야 가운데 하나인 압축 센싱(신호처리의 한 기법으로 기존의 나이키스트-섀넌 샘플링보다 더 적은 데이터로 원래의 신호나 이미지를 재현할 수 있는 새로운 기법 옮긴이)은 실생활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디지털카메라에 내장된 수백만 개의 센서가 영상을 기록하면 카메라 속 컴퓨터 칩이 영상 데이터를 압축한다. 타오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압축 센싱의 처리 방법은 기존과 다르다. 데이터를 압축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단독으로 처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센서 단에서는 연산능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타오 박사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응용 및 계산수학과의 에마누엘 캉데Emmanuel Candès 교수와 함께, 이미지 정보 대부분을 즉각 폐기해도강력한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원래 영상을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타오 박사의 아들 윌리엄과 캉데 박사의 아들이같은 유치원에 입학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시간이 두 사람에게는 유용한 연구 시간이 되었다. 타오 박사는 "우리는 매일 아침 유치원에서 만나 서로 연구 성과를 교환했다"고 말했다.

미 육군에서는 두 사람의 연구를 정찰 업무에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단화소로 데이터를 기록하는 단순하고 값싼 카메라로 전장을 뒤덮는 것이다. 카메라들이 각자 데이터를 중앙 컴퓨터로 보내면 타오 박사와 캉데 박사가 개발한 수학 기법으로 전장 전체의 모습을 재구성한다. 라이스대학의 공학자들이 바로 그런 카메라 시제품을 제작했다. 타오 박사의 가장 유명한 수학 연구는 소수에 관한 것이다. 소수란 오

 

직 자신과 1로만 나누어지는 양의 정수를 말한다. 2, 3, 5, 7, 11, 13 같은 수를 예로 들 수 있다(1은 소수가 아니다).

 

숫자가 커질수록 소수 간의 간격은 더 멀어진다. 하지만 기원전 300년경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는 소수가 무한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소수에 관한 문제 중에서 아직까지 답을 찾지 못한 문제는 아주 많다. 유클리드는 '쌍둥이 소수(35. 1113처럼 2만큼 떨어져 있는 한 쌍의 소수)'도 무한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했지만, 증명은 하지 못했다. 그 뒤로 2,300년 동안 그 추측을 증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수 수열이 어떤 숨겨진 패턴에 따라 나타나는지, 아니면 무작위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문제도 중요한 미해결 문제다.

 

2004년 타오 박사는 당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수학자 벤 그린Ben Green 박사와 함께 소수 수열을 조사한 끝에 유클리드의 쌍둥이 소수 문제를 해결했다. 소수 수열이란 똑같은 간격으로 연속되는 소수를 말한다(예를 들어 3, 7,11은 간격이 4인 소수 수열이지만, 그 다음에 오는 15는 소수가 아니다). 무한한 정수 어딘가에서 간격이 똑같은 일정 길이의 소수 수열을 항상 찾을 수 있다는 것을 타오 박사와 그린 박사가 증명한 것이다.

 

페퍼먼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타오 박사의 연구 방식은 아주 독특하다. 박사가 문제를 푸는 걸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건 너무나 명확한데 왜 나는 못 봤을까? 지금까지 이 문제를 생각했던 100명의 유명한 학자들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라고 말이다."

 

수에 능숙한 타오 박사의 재능은 아주 어릴 때부터 눈에 띄었다. 그는 항상 숫자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2살이 된 테리 (테렌스의 애칭옮긴이)타오는 나이가 더 많은 아이들에게 장난감 블록으로 셈을 가르쳤다. 말도 빨리 배워서 장난감 블록으로 '''고양이' 같은 단어를 정확히 만들어 보여주기도 했다.

 

타오 박사의 아버지 빌리 타오는 소아과 의사로, 1972년 홍콩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다. 그는 "아마도 세서미 스트리트를 보면서 남모르게 그런 걸 배운 것 같다. 우리에게 세서미 스트리트는 그야말로 아이를 봐주는 베이비시터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장난감 블록은 장난감으로 산 것이지 학습 도구로 산 것은 아니었다. 빌리 타오는 오스트레일리아 억양과 중국 억양이 섞인 말투로 "처음에는 블록을 여기저기 어지럽히면서 갖고 놀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타오 박사의 부모는 박사가 3살 반일 때 사립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6주 만에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교실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학교 선생님도 타오 박사 같은 아이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사는 5살 때 공립학교에 입학했다. 부모님과 학교 경영진, 교사들은 박사를 위해 별도의 교과과정을 만들었다. 타오 박사는 각 과목을 공부하면서 스스로 진도를 조절했다. 수학이나 과학은 빠른 속도로 몇 학년을 뛰어넘었지만, 나머지 과목은 또래 아이들과 진도가 비슷했다. 예컨대 영어 시간에 에세이를 쓰라고 하면 무척이나 곤혹스러워했다. 박사는 "에세이는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런 건 아주 애매하고 불확실한 문제다. 나는 항상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주 명확하게 규정된 문제가 좋다"라고 말했다.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로 써보라고 했을 때는 여기저기 다니며 방 안에 있는 물건의 목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7살 반일 때는 지역 고등학교에서 수학 수업을 들었다. 타오 박사의 아버지는 제이 루오 Jay Luo 같은 어린 신동이 어떤 길을 거쳐 갔는지 알고 있었다. 루오는 198212살의 나이로 보이시주립대학 수학과를 졸업했지만, 그 뒤로는 수학계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빌리 타오는 "처음에는 아들이 루오 같은 아이와 똑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최대한 빨리 졸업하는 거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재교육 전문가와 상담한 다음에 생각이 바뀌었다.

 

어린 나이에 학위를 받고 기록을 깨는 일은 아무 의미 없다. 지식피라미드처럼 쌓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초 부분이 아주 넓어야 피라미드를 높이 쌓을 수 있다. 기둥 모양으로 빠르게 올라가면 꼭대기가 흔들려서 무너지기 쉽기 때문이다.”

 

빌리 타오는 아들에게 수학 교수를 멘토로 붙여주었다. 2년 후 타오박사는 대학 수준의 수학, 과학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국제수학경진대회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박사의 부모는 대학에서 하루 종일 강의를 들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박사는 시간을 나눠서 고등학교와 애들레이드의 지역대학인 플린더스대학을 동시에 다녔다. 그리고 14살 때 마침내 플린더스대학의 정식 학생이 되었다. 부모가 박사의 학습 능력만 보고 밀어붙였다면 이미 2년 전에 졸업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타오 부부의 세 아들 모두 수학에 탁월했지만, 타오 박사 외에 두 아이는 키우면서 고충이 많았다. 타오 박사보다 2살 어린 트레버는 최고수준의 체스 실력을 갖춘 자폐아이며 음악 분야의 서번트여서 악곡(오케스트라 전체가 연주하는 악곡까지 포함)을 단 한 번 듣고 피아노로 똑같이 연주하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트레버는 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방과학기술국에서 근무한다.

 

막내인 나이젤은 아버지에게 '또 하나의' 타오 박사가 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부모는 나이젤의 학습 속도를 타오 박사보다 좀 더 늦췄다. 나이젤은 경제학과 수학, 컴퓨터 과학 학위를 받고 지금은 구글 오스트레일리아 지사에서 컴퓨터공학자로 일한다.

 

빌리 타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배우는 즐거움을 강조하는 편이다. 즐거움은 뭐든 하는 것이지 뭐든 이기는 건 아니다."

 

타오 박사는 2년 만에 학부과정을 마치고 다시 1년 만에 석사 학위를 받은 다음 박사 공부를 위해 프린스턴대학으로 갔다. 그는 나이가 훨씬 많은 학생들과 어울려도 겉돈다고 느낀 적이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비슷한 학교 중에서 나이에 잘 맞는다고 생각한 곳은 결국 프린스턴이었다. 그곳에서도 동료들보다 훨씬 어렸지만, 박사가 항상 모든 면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수학을 대하는 박사의 태도도 한층 성숙해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수학은 경쟁이고 문제이고 시험이었다. "단거리 육상 경기에 가까워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

 

타오 박사는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수학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그냥 막연하게 생각했다. 어떤 권위자가 수학자에게 문제를 주면 그냥 그 문제를 푸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수학 연구는 마라톤에 더 가깝다"고 박사는 말했다.

부모이자 교수가 된 지금 타오 박사는 배우는 것 외에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한번은 저녁에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네 살배기 아들에게 물었다. "쿠키 10개가 있다면 거실에 있는 5명에게 몇 개씩 나눠줄 수 있겠니?" 아들 윌리엄이 박사에게 답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박사는 잘 모르겠는데? 네가 말해볼래?"라고 대답했다. 윌리엄은 박사에게 답을 알려 달라고 조금 더 보채다가 쿠키를 2개씩 5묶음으로 나눴다.

 

타오 박사는 앞으로 수학자가 아닌 더 많은 사람에게 수학적 사고를 가르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수학적 사고는 주택 융자금의 조건을 비교할 때처럼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박사는 "이런 건 거의 모든 사람이 배워도 좋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연구에 전념해야 한다.

 

여러모로 연구는 내 취미이기도 하다. 늘 다른 언어를 배우고 싶은데, 당분간은 힘들 것 같다. 그런 일은 나중에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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