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4 베른하르트 리만이 남긴 어려운 숙제 리만가설(Bernhard Riemann, 1826-1866) 20세기 초, 영국의 대수학자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Godfrey Harold Hardy)는 북해를 건너는 배에 오르기 전에 특이한 형식의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곤 했다. 날씨가 안 좋아질 것처럼 보이면, 그는 리만가설의 해답을 알려주는 엽서를 보냈다. 하디의 말에 따르면, 하디의 전기를 쓴 콘스탄스 레이드 Constance Reid는 “신은 하디에게 리만가설을 푸는 영예를 안고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려 했고, 하디는 그런 신에게 싸움을 걸었다"고 확신했다. 베른하르트 리만이 1859년에 발표한 소수 분포에 관한 논문에서 처음으로 제시된 리만가설은 여전히 수학계의 중요한 미해결 난제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문제를 정복하는 사람은 당연히 월계관을 쓰게 될 텐데, 여담이지만 상금도 많이 받게 될 것.. 2022. 8. 18.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한 그리고리 페렐만(Grigori Yakovlevich Perelman, 1966-현재) 1904년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가 우주의 모양을 설명하고자 3차원 공간에 관한 추측을 만들었다. 이 푸앵카레 추측은 위상수학 분야의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지난 100년 동안 증명되지 않았다. 2000년, 보스턴의 한 독지가가 증명에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걸었을 때 그가 상금을 수여할 일이 생길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2002년에 그리고리 페렐만이라는 러시아의 수학자가 간결한 논문을 온라인 아카이브에 게재했다. 페렐만은 더 광범위한 문제와 씨름을 하던 중에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는 데 남아 있던 걸림돌을 기적적으로 일소했던 것 같다. 곧 수학계에 소문이 널리 퍼져나갔다. 페렐만의 증명은 천재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소문에 의하면 페렐만은 이를 출판할 계획이 없었다. 그런 .. 2022. 8. 17. 골드바흐의 추측과 4색정리 골드바흐의 추측 1742년 러시아 공무원 크리스티안 골드바흐 Christian Goldbach가 스위스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 Leonhard Euler에게 편지를 보내 화가 날 정도로 어려운 문제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때 그는 200년 후에도 그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는 거의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최근 브로드웨이 연극의 소재가 된 앨런 튜링 Alan Turing이 1937년 골드바흐 추측의 답이 절대로 발견되지 않을 것임을 보였던 것을 골드바흐가 알았다면 분명히 깜짝 놀랐을 것이다. 표트르 2세의 개인 교사로 일했던 골드바흐는 모든 짝수를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추측했다. 수학의 원자로 비유되는 소수는 2, 3, 5, 7, 11과 같이 1과 자기 자신 이외의 다른 수로는 나누어.. 2022. 8. 17. 달랑베르와 라그랑주(Jean Le Rond d'Alembert, 1717~1783, Joseph Louis Lagrange, 1736~1813) 달랑베르 Jean Le Rond d'Alembert, 1717~1783 달랑베르는 데투시 장군Louis-Camus Destouches(1668~1726)과 탕생부인Claudine Guérin de Tencin 사이에 사생아로 태어났다. 탕생 부인은 아이를 노트르담 사원 옆에 있는 장르 롱 예배당에 버렸는데, 장 르롱 달랑베르라는 이름은 이 예배당에서 따온 것이다. 탕생 부인 (1682-1749) 프랑스 18세기 전반의 대표적인 살롱을 운영한 사교계의 꽃. 저명한 작가 및 정치가들과의 긴밀한 관계로 인해 18세기 사교계에서 두드러진 인물중한사람이다. 예배당에 버려진 달랑베르는 그곳 근처에 사는 유리가게 여주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훗날 그 사연을 알게 된 데투시 장군은 달랑베르가 9세가 되던 해, 많.. 2022. 8. 17. 기하학엔 왕도가 없다. 유클리드(Euclid, BC 300?) 유클리드(Euclid)는 알렉산드리아 학파 초기에 활동했던 사람이다. 수학 역사에서 그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수학은 이미 고대로부터 자연과학의 흥망과 밀접히 연관되어 온 것으로, 이것이 근세에 와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유클리드의 생육에 관해서는 확실한 것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출생지나 학력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어서 일정하지 않다. 다만 그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초기, 즉 BC 300년경 알렉산드리아에 생존한 것은 확실하다. 그는 라고스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가 좀 더 쉽게 수학을 배울 수 없느냐?"라고 물었을 때, "수학엔 왕도가 없다."라는 유명한 잠언을 남긴 사람이다. 유클리드 오늘날에 전해진 유클리드 저작의 필두는 사다리(Stoicheia)』라는 기하학 원론'이다. 이것은 .. 2022. 8. 17. 이전 1 2 3 4 5 다음